우표 사랑에 빠지다 / 여상호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매주 목요일이 재활용품 수거일이다. 어느 날 폐지를 버리러 가서, 버려진 상자 속에서 우표가 붙은 봉투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가게 되었다. 그날 나는 여러 생각에 빠져들었다. ‘우표 한 장이 땅에 떨어져 있었으면 주웠을까?’ ‘십 원 동전이었다면 집었을까?’ 1960년 4월 혁명이 있던 해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5학년 때 우표 수집을 시작해서 2년차 초보 수집가였던 나는 여름방학 때 부산의 친척집에 놀러 왔다. 당시 광복동의 미화당백화점에서 용두산공원으로 연결되는 구름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걸어서 올라야 했다. 그곳 5층에서 우표상을 발견, 세계 각국 100종 패 킷을 처음 손에 넣게 되었다. 그 패킷은 지금도 눈에 훤하다. 인도의 지도우표, 벨기에의 국왕 초상 우표, 영국 여왕 우표 등이 주류였는데, 처음 보는 황홀한 외국우표에 눈이 확 뜨이게 되었다. 이후 중학교 때 주간 학생 영자 신문을 구독하고 영어 선생님께 묻고 또 물어 펜팔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그게 본격적인 수집의 시작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55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펜팔을 하고 있다. 십여 년 전 전시회 때는 ‘내가 받은 실체봉피’라는 타이틀로 출품도 했었다. 작품은 126개국의 실체봉피 로 구성했는데 학생들로부터 큰 반응이 있었다. 이후 펜클럽이 생기고 우취 강좌도 하게 되었으며, 우취회도 만들어졌다. 욕심에 150개국을 채우고 싶어서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된 몇몇 국가와 아프리카 쪽 몇 개국의 수집가와 더 교류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1965년 5월 월간 《우표》가 창간되었을 때, 나는 서점에서 창간호를 직접 구매했다. 다음 해 4월호(통권 10호) 독자통신란에 ‘한국우표 사용제 구함’이라고 광고를 냈다. 아마 이때가 사용제 우표 수집의 정점을 찍은 시기였던 것 같다. 우표란 종이에 도안과 액면이 인쇄되면서 생명이 불어넣어지는것이다. 그야말로 축소된 세계 박물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인데, 살아 움직이는 이 우표도 시대 흐름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위로 자르던 우표가 선공, 천공으로 뜯어내도록 바뀌고, 이제는 천공에도 도안이 되며, 네모에서 삼각형, 육각형, 원형, 하트형, 사다리꼴, 마름모꼴 형태로 제작되기도 한다. 재질도 종이에서 나무, 플라스틱, 알루미늄, 실크, 금·은박, 가죽, 입체, 홀로그램, 자수, 한지로 다양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향기가 나는 우표, 야광 처리된 우표, 형광도료를 입힌 우표, 변색우표, 점자우표, 바코드, QR우표, 영원우표까지 신개념 우표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나는 국내에 있으면서 우표 발행일에 우체국을 가 보지 않은 기억이 없다. 참 오랜 시간 정열을 쏟았다. 1969년부터 사서함을 이용하고 있으니 긴 세월이지만 요즘에도 일주일이면 두 번은 꼭 들린다. 과연 대한민국의 아니, 세계의 우표 수집 인구는 얼마나 될까? ‘우체국’ 하면 편지를 보내고 전보를 치던 곳이라는 개념이 이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고 있다. 또한 새로운 통신수단이 발달하여 우표 수집 인구는 격감하고 사람들의 책장 속에는 한두 권의 스토크북만 남아 있게 되었다.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고,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로 흥미를 돋우려는 당국의 노력도 눈에 보이지만, 일관성 없는 발행 정책과 추진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관련 부서 담당자와 우취인의 소통이 이뤄지고 우취인의 의지가 정책에 반영되며 틀이 잡히는 듯하다가도 담당자의 타 부서 전출로 맥이 또 끊기고(물론 공무원의 순환 근무제가 문제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 지역에서 열리던 전시회도 뜸하다. 물론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로는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가 너무 많고, 경쟁하듯 이곳저곳에서 예산만 쓰고 성과가 없다고 하지만, 예정에 있던 우표전시회도 취소되고 우정사업본부에서 경영 합리화를 따지다 보니 수익성 없는 전시는 이제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처음 시도된 ‘2015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의 지방 전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일까? 여러 전시회가 묶음으로 된 전시회여서인지 열악한 전시장의 위치와 불편한 교통에도 관람객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자원봉사자는 서울 코엑스처럼 스쳐 지나가는 관람객이 아닌, 관심을 표명하고 질문하는 입장객이 많은 듯하다고 했다. 전시를 주최, 주관, 후원하는 관련 부처 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진다면 지방에서 열리는 전시회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몇 년간 필자가 거주하는 부산·경남 지방 예선전도 진주, 울산, 창원, 김해에서 개최되었으며 성과도 있었다고 본다. 취미란 누가 뭐래도 활동을 하는 동안 즐겁고 삼매경에 빠져들어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세계인이 즐기는 우표 수집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접목할 수 있는 젊은 인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사라지기 전 흔적을 남기는 노병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무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세상이라지만 오히려 돌고 돌아 폴더형 휴대 전화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탑재한 휴대 전화도 출시된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신용카드보다 작은 우표와 사랑에 빠져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