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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 기행과 편지





섬 기행과 편지 / 김익회
어느새 여름옷을 벗고 소슬바람이 가을을 엮어간다. 문득 시간이 멈춘 원초적 자연 속에 나를 풀어놓고 낯섦과 충돌하고 싶어졌다. 익숙한 삶을 탈출하여 배낭 하나 짊어지고 홀로 섬 여행에 나섰다. 편지의 발걸음인 우표는 ‘우리들이 있는데 왜 홀로냐’며 곱게 눈을 흘긴다. 여느 때처럼 시집 한 권, 수첩, 편지준비물과 동행한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 그리움을 담을 수 있는 편지가 있어 외롭지 않다. 100개의 섬 기행을 계획하고 짬짬이 진행 중이다. 백령도, 대청도를 여행하고 설렘을 안은 채 소청도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배는 비단 물 주름을 힘차게 가르고 햇살이 엎질러진 바다는 황금비늘로 눈부시다. 배는 목쉰 기적을 토하며 선착장에 멎는다. 이 지역의 정보를 얻으려고 소청도 우체국에 들렀다. 섬 우체국은 주민의 손발이고편안한 전방위상담소다. 우체국장의 호의로 우체국 관사에 여장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바다와 접한 이곳 소청도 우체국은 바닷가에 수놓은 한 폭의 그림이고 한 편의 시(詩)다. ‘길 하나 질러 놓고 바다와 우체국이 편지를 쓴다. 서로 신비스런 눈빛으로 얼굴을 붉히다가 그리움에 지치면 경계선을 허물고 사랑싸움을 한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싸움은 처음 보았다.’ 바닷가 우체국의 시상(詩想)을 안고 등대를 만나러 노하마을로 향했다. 깎아지른 듯한 해벽 정상에 하얀 등대가 외롭게 바다를 내려다본다. 등대에 이르렀다. 등대장이 친절히 맞는다. 이곳 등대는 1908년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다며 전시실을 안내하고 등대에 얽힌 애환의 사연을 들려주며 차를 대접한다. 얼마나 외롭냐고 물으니 “고독을 30여 년 먹었더니 고독과 친구가 되었다”며 외로운 웃음을 짓는다. 나는 외로움을 편지로 치료하세요라며 약간의 우표와 함께 편지용품을 주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편지로 외로움을 달래겠다며 나의주소를 묻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장엄하게 누워있는 분바위에 왔다. 기기묘묘하고 거대한 바위섬이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다. 어두운 그믐날 밤에는 분바위가 등대 역할을 한단다. 여기저기 숨겨진 신비한 바다의 낯선 생태를 감상하다가 땅거미를 만나서야 숙소에 들어왔다. 달빛에 취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밤늦도록 섬일기를 쓰고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밤이 깊어간다. 내밀한 시의(時宜)의 우표를 업은 편지는 사유하는 내성의 울림이고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최고의 도구라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어제 밤새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우체국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에 감사하며 페리호로 대이작도에 왔다. 먼저 찾은 곳은 ‘이작분교’다. 9년 전 우정사업본부 주관 ‘제14회 전국우체국예금보험 어린이 글짓기대회’에서 학생수가 10명도 채 안 되는 이곳 인천이작도 분교에서 당시 3학년이던 김가람 어린이가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작품 3만여 점 가운데 금상을 수상했다. 글짓기 심사를 맡아 시상식에서 금상을 수여하고 심사평을 한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부부교사가 친절히 맞으며 차를 대접한다. 나는 가람 어린이를 만나 또 한 번 축하해주고 우표와 함께하는 편지쓰기에 대한 나의 소견을 피력했다. 이곳은 우체국이나 우취함이 없다. 우편물은 인천에서 매일 오는 배편이 도착하면 집배원이 배달하고 편지소포 같은 우편물 발송은 그 집배원에게 의뢰한다. 부부교사는 바다와 접한 조용한 민박집을 안내해준다. 바다가 한 눈에 들고, 소이작도의 명물인 손가락바위가 바다 안에 우뚝 솟아있다. 여장을 풀고 밖에 나왔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 기도하면 아이를 갖는다는 부아산 팔각정에 이르렀다. 온 천지가 바다고 모래사장이다. 바다 안의 사막이라는 ‘풀등’을 답사하고, 4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섬마을 선생님>의 실제 무대였던 ‘계남분교’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온 총각 선생님과 섬 처녀 사이에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담겼던 곳이다. 지금은 폐교되어 수풀 속에 잠든 채 주인 잃은 노란 꽃들이 애잔하다. 서녘이 설핏할 무렵 숙소에 들어왔다. 밤하늘에는 눈썹달이 정취를 내뿜고 바다는 적막 속에 잠들어 있다. 섬 기행과 함께 아련히 떠오르는 몇 분에게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쓰고 내일 여행할 소이작도를 그리며 잠을 청한다. 현요한 아침햇살을 안고 배가 들어온다. 소이작도에서 하선했다. 보는 위치에 따라 세 가지 형체로 변신하는 손가락바위를 비롯하여, 벌안모래사장과 소작도가 간직한 이모저모를 답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천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4박 5일 간의 섬기행을 돌이켜 보며 나의 편지를 받은 분들의 마음을 읽는다. 몇 장 남은 우표의 의미를 되새기며 앞으로는 우표에 더 관심을 갖고 우표전시회도 빠짐없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문다. 여행과 손편지는 서정을 덥히고 관계를 이어주는 연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