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 설레는 가슴을 안고 기념우표를 사러 멀리 떨어진 우체국까지 단걸음에 내달리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이번 우표에는 어떤 그림이 담겼을까 머릿속에 그리면서 우체국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던 시간은 전혀 지루한 줄 몰랐지요. 마침내 시트 한 장과 명판 한 세트를 받아 들었을 때의 기쁨이란. 우표를 새하얀 얇은 종이에 금지옥엽처럼 조심스럽게 싸서 책장 사이에 넣어와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렸고요, 우표첩에 정성스레 꽂아 놓곤 하루에 몇 번씩 보고 또 보곤 했습니다. 이런 보물 같은 우표를 누가 만들었을까? 어린 마음에 무척 궁금했답니다.

우표를 만들고 우표문화를 펼치는 우표팀장이 된지 어느 덧 반년이 흘렀습니다. 부임 초 ‘이명박 대통령 취임우표’를 만드느라 연말연시 내내 집념에 찬, 정감 어린, 또는 환한 웃음을 띤 당선인의 사진들을 고르고 우표에 담으려 고심하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우리 팀원 그리고 우표디자이너 모두가 큰 고생을 했지만 5년에 한 번 오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던 건 큰 경험이고 행운이었습니다.

펭귄이 그려진 ‘남극 세종과학기지 특별우표’를 만들어 극지연구소에서 기증행사를 하던 일, 깜찍한 새 ‘나만의 우표’를 출시하던 일, ‘단군왕검 우표’를 만들며 삼국유사 글귀를 한자 한자 풀이 하던 일, ‘에너지 절약 우표’를 만들려고 뜬금없이 에너지에 대해 공부 하던 일, 사용하기 편하도록 새 스티커 보통우표 전지를 개선하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우표 일을 하려면 미술이나 디자인은 물론, 역사, 과학, 사회, 정치 등에 대해 널리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우표문화의 축인 ‘한국우취연합’의 이사로서 우취인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전국 초·중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 7백여 분이 참여하시는 ‘전국우표편지지도위원회’, 그리고 편지 쓰는 주부님들의 모임인 ‘편지가족’ 여러분과 함께 하고, 체신청별 우표전시회와 각종 편지쓰기 대회를 후원하면서 우정문화를 알리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필라코리아 2009 아시아국제우표전시회’를 준비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지요. 무엇보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어린이 우표전시회’ 때가 생각납니다.

작품 중엔 어른 수준에 이를 정도로 빼어난 것도 있었지만 우표를 정성스럽게 대지에 붙이고 삐뚤빼뚤하게 글을 써서 만든 순수한 작품들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관람 온 초등학생들이 우표작품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노트에 기록하던 장면, 그리고 함께 전시해 놓은 파충류들을 구경하던 반짝이는 눈망울들이 마음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우표문화는 우취전문가에 국한된 진부한 분야가 아니라 남녀노소 모든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재미있고 아름답고 따뜻한 참여 문화”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표가 우정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하고 다변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우표와 편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줄어드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수시로 부딪치면서도 우표가 우리나라 우정의 역사요 우정사업을 지탱해온 근간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열심히 일하는 우리 우표팀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우취인 여러분, 일선 우체국에서 땀 흘리시는 우정가족, 그리고 모든 고객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조금이나마 더 도움을 드리고자 각오를 새롭게 다집니다. 광고 하나 하면서 짧은 글을 맺을까 합니다. 다가오는 8월 7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 COEX에서 ‘대한민국우표전시회’가 열립니다. 예년보다 우수한 우표작품을 기대하셔도 좋겠습니다. 특히, “생활속의 색다른 즐거움”을 전시회 모토로 삼아 고품격의 우표문화와 신나는 재미가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따뜻한 모든 분들을 초청합니다. 또, 어린이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얘들아 올 여름 방학 때 아빠, 엄마 손잡고 꼭 들르렴. 아저씨가 너희 나이 때 가졌던 우표에 대한 설렘과 꿈을 들려주고 싶단다.”  / 송관호 우정사업본부우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