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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코주부 우표의 발행







코주부 우표의 발행


                                                                                                                이원수 국제시사만화가


코믹만화 코주부의 원작가 김용환(金龍煥) 선생은 1912년생으로 경남 김해 출신이다. 부산진초등학교와 동래고보를 거쳐 일본에서 대학과정을 마치신 선생은 해방이 되면서 알았지만 일제치하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던 월간지로서 “쇼넨쿠라부”(少年俱樂部)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펜화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의 그림이 게재되어 나오던 바 작가의 이름은 “기타 코오지”(北 宏二)였다. 그러니까 일제말기의 일본과 한국에서의 청소년들은 그의 그림의 매력에 빠져 작가에 대한 경외심은 마치 하나의 우상을 대하듯 한 처지였었다. 전쟁이 심해지면서 일본의 패망이 짙어지자 그는 1944년, 즉 해방이 되는 한 해 전에 귀국을 하셨는데 해방이 되면서 우리는 그가 같은 한국 출신의 화가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경외심과 동경은 표현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국내로 돌아오신 선생은 작품 제작에 대한 수요가 밀물과 같아서 한국산업계에서 그 유명하였던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의 수입을 몇 배나 초월한 액수의 소득을 챙기며 지내게 되었던 것이니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선생과 나의 만남은 1955년경의 일이었다. 선생은 지금의 조선일보 건너편 프레스센터 자리에 있던 한 출판사에서 활동을 하고 계셨다. 1956년에 선생께서는 나의 작품을 당시 한국 최초의 주간지이던 “주간 희망”지에 주선해 주셨다. 이것이 나의 첫 출판계 진출이었다. 이후 1958년에 나는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국회는 지금의 세종로 서울시의회 자리였다. 프레스센터와는 서로 마주하고 있던 터라 교류가 짙어졌었다. 내가 근무했던 그 건물은 지금도 존재한다. 조선일보사 아래의 3층짜리 건물로서 “담수회”의 이름으로 영위되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의 입지여서 나는 수시로 선생께 찾아가서 먹물을 갈아드리는 봉사를 해 드렸고 설거지를 거들어 드리는 작업도 했다. 그러다가 선생께서는 일본 동경에 있던 미국 극동군 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대 공산권 심리국 요청으로 선생의 작품이 필요하다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셨다. 그러자니 우리들은 헤어지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었다.

이렇게 하여 헤어진 우리들은 내가 일본만화가협회의  “우호회원”(1991~1995)으로서 그 5년 동안 6월의 정기총회 때면 방문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요행이 이뤄지게 되었다. 즉, 이렇게 시작된 나의 일본 만화가협회 총회 행사장은 늘 도쿄호텔이었는데 행사 때마다 충격적인 일을 목도케 되었다. 그것은 6백 명이 넘는 회원들이 두서없이 왁자지껄 소란한 대화를 하다가도 순식간에 고요함을 조성하는 풍경이었다. 알고 보니 회장단이 입장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일종의 예우를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정식 우호회원이기 전에도 몇 번 이러한 사실을 목도한 바 있는 나로서는 일종의 자기반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과연 나는 선생님께 어떠한 예우를 차렸던 것인가?”하는 자괴심이었다.

나는 1991년의 행사에 참석하면서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만나 뵙기를 요청하고 앞으로는 지금과는 달리 존경의 마음을 더 조이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바 그 자리에서 선생께서는 당시 휴식 상태에 있던 코믹만화의 캐릭터 “코주부”를 제공할 터이니 계속하여 그의 활동을 지속시켜 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1991년 6월 14일의 일로서 기록사진이 보존돼 있다.

양도받은 코주부의 존재는 특히 김용환 선생과의 교분이 두터운 인사들 가운데 그 의의를 아끼는 인사들이 많아 나 자신 못잖게 깊은 관심을 가져주고 계셨는데 오늘날 우취 칼럼니스트인 “여해룡” 시인은 그 관심도가 남다른 바 있었다. 그는 1995년에 우표 발행 심의회에 제안하여 “코주부 우표”가 발행되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활약하던 “왈순 아지매”의 작가 고바우 김성환 화백도 같은 우취가로써 만화문화의 순수성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코주부”를 먼저 발행케 되었다고 나에게 “코주부” 우표의 다자인을 요청해왔던 것이다. 당시 일반 우표 값은 80원이었고 “코주부 우표”는 440원의 액면으로 발행되었는데 이 또한 격을 높여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나는 국제시사만화가로서 Hawaii, New York, Washington, London 등 9회의 국제전시회를 개최하여 왔고 Cofi Annan, Jimmy Carter, Henry Kissinger, George Bush 등 140명이 넘는 국제적인 인물들에게 그들이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여한 공로를 작품으로 담아 기증해왔지만 그들에게 제공하는 작품에는 반드시 이 “코주부 우표”를 부착했다. 우취 문화의 존엄성과 효과를 절감치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