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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우표전문목록 발간에 대한 제안




한국우표전문목록 발간에 대한 제안


허진   월간《우표》간행위원, 한국테마클럽 회장


2024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우정이 창시된 지 140주년이 된다. 세계우표전시회를 개최할 것인지, 아니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지금은 그보다 우취계의 또 다른 숙제 하나를 처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건 다름 아닌 한국우표전문목록을 발간하는 일이다. 한국은 식민지배와 6·25 동란을 겪고도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굴지의 산업, 무역 국가로 성장했고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우취의 수준이나 양적 팽창 또한 그간의 경제 성장에 비례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전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자국의 전문우표목록을 간행해 온 데 반해 우리는 발행이 중단된 지 오래다. 물론 그간 연합과 대한우표회 등을 중심으로 목록 발간을 계획한 적은 있었지만 모두 중단되거나 좌절되었다.
여하간 해당 계획들은 시도만으로 종료되었기에 굳이 그 경과와 문제점을 논하기보다 21세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우리는 그러한 책 한 권이 없는 현실을 새삼 목도하면서 이에 당면한 숙원의 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단 현재 우리 우취계에 놓인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바로 이 전문목록의 간행이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목록의 경우, 구한국과 해방 후 초창기 우표에 대해서는 약간의 주석과 에러 및 변종에 대한 기술을 확인할 수 있지만, 주요 보통우표 시리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나 해제(解題)는 전무하며, 기타 기념우표에 대해서도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조차 나열되지 않은, 단순한 우표 가격표의 수준에 그친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과 같은 주요 선진국의 경우 표준목록 자체가 웬만한 나라의 전문목록에 버금가는 분량과 깊이를 체현하고 있고, 이웃 일본은 전 세계 최정상의 위치에 각인될 만큼 풍부한 내용과 자료 제시,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적기에 반영하는 최고 수준의 목록을 간행해 오고 있으며, 한국보다 현저히 경제력이 떨어지는 체코나 헝가리도 우리보다 월등히 우수한 전문목록을 냈다. 예컨대 독일의 밋헬(MICHEL) 목록은 한국 우표 중 1955년에 나온 해군 창설 10주년 기념우표에 3개의 서로 다른 인쇄판이 존재하는 것을 기재하는, 전문목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세한 주석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의 진위 여부를 떠나 외국의 목록이 우리보다 더 자세하다고 하면 좀 창피스럽다는 고백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전문목록을 만든다면 우취 선진국 수준의 것을 당장 성취하기는 힘들 것이나 우선 대한우표회가 과거에 출간했던 표준한국우표목록(標準韓國郵票目錄)을 하나의 준거틀로 삼을 수는 있다. 이 목록에는 개별 우표 발행 배경에 관한 테마적 설명까지 대단히 상세히 나타나 있으나 이를 다 실을 필요는 없다. 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개별 우편요금시기에 하나의 보통우표 시리즈가 갖는 인쇄 공학적 데이터와 거기에 수반하는 우편사적 정보이므로 테마적 지식은 우표발행 안내카드 등을 참고하면 될 것이며, 급한 것은 그와 같은 보통우표들의 기초 정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수집가나 우표상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개개의 변종이나 에러가 어느 정도 시장 가격을 갖는가에 대한 목록 평가 부분인데, 이는 요즘처럼 온라인 매매가 번성하고 있는 실정에서는 공정가격 내지 납득할 만한 평가를 기재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따라서 만약 이 부분에 너무 많은 기간이 소요되거나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높다면 평가표기 없이 관련 내용만을 기록할 수도 있다. 또한 논란이 될 내용이 있다면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다고 밝히면서 굳이 확답을 규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게 기존 표준목록과는 다른 전문목록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전문목록의 분량이 많아 단권화가 힘들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에는 20세기, 즉 1999년이나 2000년까지 나온 우표만을 대상으로 하면 아무리 자세한 내용을 수록한다 하더라도 단권으로 충분히 발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싸소네(Sassone) 목록은 아예 최근 발행분을 분리하여 2권으로 발간하면서 역으로 수익 증대를 노렸다.
어쨌든 2024년이 오기 전에, 아니면 그때 맞추어서라도 국격에 걸맞은 연합 차원의 전문목록 발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사적인 목록 발행 주체가 그러한 업적을 남기기를 바랐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다수 전문가들의 합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 작업이 한 단체나 개인에 의해 추진될 수는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이 사업은 반드시 연합이라는 공적 단체의 공신력에 기반하여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에 의해 발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단 만약 발간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당장은 여타 국가 수준의 전문적 내용이 모두 수록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발간을 거듭할 때마다 기존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발전시켜 나간다면 언젠가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전문목록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오로지 독선과 아집으로만 일관하는 일부 인사들의 간섭이나 불필요한 공명심, 금전적 수익을 기대하거나 아니면 이 발상 자체를 훼방하는 모든 부정적인 측면들을 극복하면서 기능할 수 있는 불가결한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동원해야만 한다. 우선 예산을 확보하는 것과 구체적인 집행계획의 수립을 위한 발간위원회의 발족이 선행되어야 하며, 책임감 있게 자료를 제공하고, 해당 분야의 집필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위촉이 절실하다. 이번 기회에 성취되기를 희망한다.
외국인들은 우리를 보고 ‘개인적 역량은 비교적 우수한데, 집단적인 팀플레이는 미달’이라는 말을 곧잘 해 왔다. 사소한 문제점 하나에 대해 그토록 난리를 피우는 작금의 우취계가 이 시점에서 전문목록 하나 만들지 못한다면, 후에 그들이 ‘역시 개개인의 역량에 문제가 있으니까 그것도 안 되는가 봐’라고 비웃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