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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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독한 짝사랑








지독한 짝사랑


                                                                                           강경원 간행위원




그리 오래 살아온 것 같지 않은데 이미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아스라해진 조각들이, 또 내가 걸어왔던 삶의 행동이나 말들이 타인의 입을 통해 기억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또는 ‘내가 그때 그랬었나?’ 하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때론 억울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내게는 그다지 소중한 일들은 아니었던 듯 곧장 다시 잊어버리곤 한다.


하나 찰나의 순간이라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강력하게 각인된 추억들은 어제 일처럼 기억이 또렷하다. 어느 땐가 아버님께서 신문 구독을 하시고, 나의 우표 수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수집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매일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었다. 그때 신문에는 띠지에 1원짜리 상원사동종비천상 우표가 붙어 있었다.
당시 이러한 형태로 신문이 배달되었었다. 아버님께서 신문을 보시고 나면 띠지에 붙어 있는 우표를 모으는 게 전부였다.


누런 종이에 밥풀로 붙여 보관하면서 동네 형들에게 자랑도 하고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척 누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행 열차를 탔다.
고모님 댁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우표수집책(스톡북)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낱장 우표들은 물론 꿈에 그리던 동화 시리즈가 시트까지 꽂혀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깨끗한 우표는 본 일이 없었다.


촌놈 서울에 와서 많은 차와 빌딩들에 시선을 뺏겼지만 그 작은 책 한 권과 만남의 충격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릴 만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수돗물에서 나는 지독한 소독약 냄새나 연탄가스 냄새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장롱 속의 우표책 생각뿐이었다. 내려오는 열차 속 내 짐 꾸러미엔 양심과 맞바꾼 우표 몇 장이 들어 있었다.


대학 진학을 못하고 공장 생활을 할 때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때도 항상 내 곁엔 우표가 있었다. 욕심만큼 갖질 못하니 우표 수집을 나는 ‘짝사랑’이라고 부른다.
살림살이가 넉넉해 본 적이 없었으니 항상 그 격에 맞게 수집을 할 수밖에 없었으면서 나를 위안하기 위해 ‘수집을 못하는 것도 수집의 일부다’라는 궤변을 신조로 삼았다.

어쨌든 우표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은 계속되었다. 40대 중후반쯤 됐으려나 사회인 야구를 하려고 리그에 가입하려니 중학교 때 생활기록부가 필요하단다. 선수 생활을 했다면 나이 제한을 두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생활기록부를 떼어보니 생각보다 작았던 당시 내 키가 눈에 띄었고, 취미란을 보니 중학교 1~2학년 때가 우표 수집이라 적혀 있었다.
민망해서였을까? 3학년 때는 왜?
이유는 분명했다. 우표 수집은 계집애들이나 하는 거라며 남학생들 사이에서 약간 조롱거리가 되었었다. 단언컨대 3학년 때 취미나 특기가 독서는 절대 아니었다. 맹세도 할 수 있다.


추억을 더듬다가 문득 그때 시간으로 돌아가 보니 방학 숙제는 언제나 우표 수집이나 상표 수집을 해서 제출했던 기억이 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우표를 얻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다니던 회사가 IMF로 문을 닫고, 서울에서 경기도 시흥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어찌어찌 남이 하던 문구점을 인수하여 새로 문구점 문을 열면서 간판에 우표 수집이라는 글자를 집어넣었다. 12년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우표를 사러 오거나 팔러 온 사람은 손을 꼽아보아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꼬마 손님들의 “근데 아저씨 우표 수집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오히려 더 많이 받았다. 다만 우표 때문에 만나 즐거이 얘기를 나눴던 우취인들과의 만남은 큰 소득이었다.


부러진 천막 자루와 ‘한물간 취미’라 낙인이 찍힌 우표 수집이라는 글자가 왠지 서글퍼 보인다. 지금은 한적한 지리산 산골로 내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우표책들을 뒤적이며 끄적거리는 게 일상의 가장 큰 행복이 되었다. 60여 년 지독한 짝사랑을 해 온 우표가 이제 내게 자그마한 은전을 베풀어 주는 것은 아닐는지…….
아무리 그래도 훔치면 안 되는 건데 훔치기까지 했던 나의 짝사랑.
다음 주 중이면 외국 우표 사용필 뭉텅이가 산골로 배달이 될 터인데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 난 내 모습에서 짝사랑이 분명하지만 ‘난 아직도 열애 중’.